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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Race to Freedom :Um Bok Dong,2018)

2019.02.27 개봉

'자전차왕 엄복동' 관객수 : 172,213명

<자전차왕 엄복동> 줄거리 (스포 有, 결말 有)

 

때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던 시기,

일제는 조선에 여전히 남아있는 민족의식을 꺾고 그들을 정신적으로도 지배하고자

자전차 경주대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전차경주 대회에서는 매번 일본의 '모리시타(한성빈)'가 우승하고

일본의 계략대로 조선의 아이들은 모리시타를 응원하는 노래까지 만들어

일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시장에서 물장사를 하는 엄복동(정지훈),

그는 자전거를 타고 물장사를 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집안 형편상 자전거를 살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자전거는 최소가 100만원이상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복동의 아버지(이경영)가 엄복동의 동생에게 대학교 갈 돈을 주었지만

엄복동의 동생은 그 돈으로 엄복동에게 자전거를 사주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자전거를 선물받은 엄복동은 자전거를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혼난 엄복동은 그날로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오게 됩니다.

 

서울로 상경한 엄복동, 그곳에서 열린 자전차 경주대회를 관람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독립운동가인 형신(강소라)이 일본 간부들을 제거하고자 폭탄이 든 가방을

설치하였지만, 눈치가 없는 엄복동은 그 가방을 돌려주기 위해 가방을 들고 형신에게 갑니다.

결국, 일본 간부들을 제거 하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버리죠

한편, 재호(이범수)는 자전차 경주대회에서 조선인이 우승을 해야

일본인의 콧대를 꺾을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자전처 선수를 모집하게 됩니다

그곳에 엄복동은 참여하게 되고, 재호의 밑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연승가도를 달리던 모리시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모리시타를 꺾었다는 이유로,

일본을 이겼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우뚝서게 됩니다.

 

 

일본 간부들을 암살하던 형신은 친일파 간부 재필(이원종)을 죽이고자 은행에 들어가지만

매복해있던 사카모토(김희원)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 포위되고,

형신을 구하고자 독립운동 동료였던 도민(고창석)이 대신 죽게 되고

형신은 그곳에 가까스로 도망치게 됩니다.하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였죠

이후, 부상에서 회복한 형신은 다시 한번 재필을 죽이고자 하지만

다시 계획이 어긋나게 되고, 쫒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때 엄복동이 나타나 형신을 자전거에 태우고 도망을 치게 되지만

결국 형신은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엄복동은 그자리에서 체포가 되고

일본은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엄복동을 자전차 대회에서 이기면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을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우승하지 못하도록 엄복동의 다리를 못쓰게 만듭니다.

그리고 모리시타와 라이벌인 카츠라(정석원)까지 대회에 출전시켜

엄복동의 우승확률을 아에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전차 경주대회날,

경주가 시작되고 카츠라와 엄복동의 이파전이 시작됩니다

엄복동은 다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카츠라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엄복동은 자전차 대회 우승후, 자전거를 들고 일본 간부들에게 던져 조선의 사기를 보여줍니다

엄복동을 체포하려는 일본군들이 몰려오지만,

엄복동의 우승으로 사기충전되있던 조선인들이 다같이 나와 엄복동을 지키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끝이납니다.

1913년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부터 시작된

엄복동 선수의 우승은, 국권이 상실된 조선에

민족적 일체감과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었지만...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이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일제 감정기 당시,

엄복동이라는 인물은 대단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조선인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일본을 꺾고 자전차 대회에서 우승한 '엄복동'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었지만..

'자전거 도둑'이라는 오명예도 함께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1913년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특히 평양역전 광장에서 개최된, 조'일 선수 연합경기에서 엄복동과 황수복이

각각 1등, 3등을 차지하며, 당시 일제의 침략 야욕 앞에 국운이 쇠퇴해

가던 상황에서 국민들의 환호와 감격이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당시 <매일신보>에서는 엄복동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엄복동에 대해서는 '자전거 대왕'이라는 말이 자자하였는데,

능히 엄복동의 기예를 당할 자가 없음으로 우승에는

참여를 허락하지 않고, 다만 선생으로 대접하는 일을 보건대

가히 진기하고 탄복할 일이다.!

이렇게 한시대를 '영웅'이라는 말로 표현할정도로 유명한 엄복동이었지만,

생전 자전거 수십대를 훔쳐, 장물로 팔았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적이 있는 '상습 절도범'이었습니다.

당시 자전거 한대 값은 쌀가마니 수십 가마니로,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자전거 한대당 300~4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자전거 도둑이라고 최초 보도된것은 1926년이었지만,

이후 1950년에도 보도가 되었으므로 24년동안 자전거를 훔쳐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엄복동의 최후는 더 비참했습니다.

그동안 벌어두었던 돈은 모두 탕진하고, 집도 구하지 못해

동두천시와 의정부시 일대를 떠돌았으며, 6.25전쟁시 1951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들려오는 설에는 한 야산에서 폭격을 맞아 사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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